구름 위에서/신진
황혼을 안고 걸어가면
저쪽에서 걸어오는 사내가 있다
황혼을 안고 걸어가면
저쪽 끝을 향해
걸어가는 사내가 있다
모양은 비슷해도
길이 다르다
서로 다른 길에서 같은 길 간다
세상의 끝으로 가던 사내와
세상의 끝에서 오던 사내가
한 점으로 스미는 지점
비껴간다, 서로
모르는 사이
하나는 가고 하나는 오건만
모양이 같다, 구름 위에서는
-신진 시집 〈석기시대〉 중에서-
고층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납작해진 사람들은 키가 큰지 작은지, 인물이 좋은지 나쁜지, 옷을 잘 차려입었는지 못 차려입었는지…. 알 수가 없다. 표정도 이력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심지어 자동차나 나무와도 닮았다. 그러나 지상에서 내려와 같은 각도로 바라보면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양새는 참으로 다양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각각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세상의 끝으로 가던 사내(죽음)는 세상의 끝에서 오던 사내(탄생)의 미래겠지만 한 점으로 스미는 지점은 없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노년을 맞이한 시인은 구름 위에서 잠시 신의 영역을 맛본 모양이다. 김종미 시인